첫째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안돼 뜻하지 않게 임신을 한 김은영(30·서울 영등포동)씨는 임신 8주가 지나서야 병원을 찾았다. 임신 사실을 모르고 치과에서 신경 치료 마취주사를 맞아 약물에 따른 기형아 출산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태아의 건강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 안도했다. 반면 역시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안 이모(32)씨는 얼마전 아이 상태를 확인한 결과 ‘신경 결손증’ 장애아로 판정돼 눈물을 머금고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의사에게서 “신경 결손증은 임신 전부터 엽산제를 복용할 경우 3분의 2를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이씨는 아무런 준비없이 임신을 한 자신에 대해 심한 자책감을 느끼고 있다.
고령 임신이 갈수록 늘면서 기형아 발생 위험도 높아진 만큼, 계획 임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 계획없이 아이를 가진 임신부는 계획 임신부에 비해 약물이나 술, 흡연 같은 기형 유발 물질에 노출되는 위험이 배 이상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관동의대 제일병원 산부인과 한정렬 교수는 최근 임신부 13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임신 초기 알코올 약물 흡연 방사선 등 기형 유발 물질에 노출된 비율이 비계획 임신부(657명)가 77.3%(508명)로, 계획 임신부(697명)의 38.3%(267명)보다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25일 밝혔다.
기형유발 물질별로는 여드름 치료제나 스테로이드 성분의 피부약, 간질 치료제, 항응고제,일부 고혈압제 등 약물 노출은 비계획 임신부가 계획 임신부보다 3배 더 높았다. 또 알코올 노출은 2배, 방사선 노출은 2.5배 가량 높았다. 흡연은 계획 임산부와 비계획 임산부간 의미있는 차이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계획 임신율은 아직 50%를 밑돌고 있어 여전히 많은 임신부들이 임신 초기 기형유발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심장 기형이나 신경관 결손, 언청이 등 기형아 출산이 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한정렬 교수는 “임신 6∼7주 때까지 신경관 결손 같은 큰 기형들은 대부분 형성되는데, 많은 임신부들이 그 이후 임신 사실을 알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이를 계획하고 있는 부부는 반드시 3개월 전부터 약물이나 담배 술 등을 피하고 운동으로 신체를 건강하게 가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뇨, 천식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임신전 전문의와 상담이 필수.
아울러, 신경관 결손 등을 막아주는 엽산제와 종합 비타민 복용도 중요하다. 선진국들은 15∼44세 가임 여성들에게 수정 1개월 전부터 엽산제를 하루 1정(엽산 400마이크로그램 함유), 기형아 출산 경험이 있는 경우는 하루 4정씩 복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시리얼, 파스타 같은 식품에 엽산을 첨가해 국민들에게 공급, 신경 결손증 발생률을 전체적으로 약 30% 정도 줄였다는 보고도 있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 가임 여성들은 몰론 임신부들도 거의 대부분 엽산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정부가 엽산 복용으로 기형아 출산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 홍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계획 임신, 기형아 출산 줄인다
